관부 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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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관부 훼리는 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와 대한민국 부산을 연결하는 해상 여객 및 화물 운송 서비스이다. 1905년 관부연락선으로 개설되어 한일 병합 이후 일본 국내 노선으로 편입되었다가, 1945년 운항이 중단되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이후 1970년 관부 페리 주식회사 설립과 함께 운항이 재개되었으며, 1983년 부관페리의 공동 운항으로 매일 운항이 가능해졌다. 현재는 하마유(Hamayuu)호가 운항 중이며, 과거 여러 선박들이 운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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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부 훼리 - [회사]에 관한 문서 | |
---|---|
회사 정보 | |
회사명 | 간푸훼리 주식회사 |
영문 회사명 | Kampu Ferry Co.,Ltd. |
![]() | |
종류 | 주식회사 |
국적 | 일본 |
본사 우편번호 | 750-0066 |
본사 소재지 |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히가시야마토마치 1초메 10번 60호 |
본사 위도 | 33° 56' 52" N |
본사 경도 | 130° 55' 35" E |
설립 | 1969년 (쇼와 44년) 6월 23일 |
업종 | 해운업 |
통일 금융 기관 코드 | 해당 없음 |
SWIFT 코드 | 해당 없음 |
법인 번호 | 8250001005255 |
사업 내용 | 국제 정기 항로 운항 |
대표자 | 대표이사 사장 이리타니 잇세이 |
자본금 | 2억 1600만 엔 |
매출액 | 정보 없음 |
총 자산 | 정보 없음 |
직원 수 | 80명 |
결산기 | 정보 없음 |
주요 주주 | 간코기선 |
주요 자회사 | 정보 없음 |
관련 인물 | 정보 없음 |
외부 링크 | 공식 웹사이트 |
특기 사항 | 정보 없음 |
2. 역사
1905년 관부연락선이 부산과 시모노세키 간 항로를 개설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1910년 한일 병합으로 일본 국내 노선이 되었고, 일본, 조선, 만주, 유럽을 잇는 중요 노선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고 한반도 통치권을 잃으면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성립, 한국 전쟁을 거치며 20년 이상 정기 해상 교통이 끊겼다. 1964년부터 대한해운이 부산-고쿠라-고베 간 주 1회 왕복한 것이 한일 간 항로의 전부였다.[1]
1965년 한일 기본 조약 체결로 국교가 수립되자, 1967년 한일 경제 각료 회담에서 관부 항로 부활이 논의되면서 부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7] 시모노세키시와 부산시 시장이 창구 역할을 맡았고, 시모노세키 시장 이가와 카츠미가 간코 페리 사장 이리야 토요스에게 상담하여 계획을 검토했다. 한일 양측에 법인을 설립, 공동 운영하고 각 법인이 페리 한 척씩 보유하여 수익을 공유하는 공동 운항·공동 계산 방식이 채택되었다.[7] 1969년 6월 21일 간코 페리, 일본우선, 미쓰이 OSK 선박, 가와사키 기선, 도요타 자동차 판매, 우베흥산 등 출자로 '''관부 페리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자본금 1.8억엔).[1]
1970년 6월 16일 부산항 출발 편부터 운항이 재개되어, 25년 만에 양 시 간 정기 해상 교통이 연결되었다.[1] 시모노세키 측은 월, 수, 금요일 오전 9시 출발, 부산에는 당일 오후 4시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운임은 1등 8640엔, 2등 5400엔, 자동차는 차체 길이 4미터까지 7560엔, 5미터까지 10080엔이었다.[2] 양국 자동차 규격 및 법규 차이로 항송한 자동차가 상대국 도로를 주행할 수 있는 더블 넘버 제도 도입까지는 시간이 걸렸다.[3]
2. 1. 관부연락선
1905년에 부산항과 시모노세키항을 잇는 관부연락선이 개설되었다. 1910년 한일 병합 이후 일본의 국내 노선으로 편입되어 일본, 조선, 만주, 유럽을 잇는 중요한 노선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면서 운항이 중단되었다.[1]2. 2. 관부 페리 운항 재개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한일 간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1905년 개설되었다가 1945년 이후 20년 넘게 중단되었던 관부 항로 부활 논의가 시작되었다.[1][7] 1967년 한일 경제 각료 회담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면서 항로 부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7]1969년 6월 21일, 간코 페리 등 여러 해운 대기업과 도요타, 우베흥산 등 한국과 관계가 깊은 상사들의 출자로 '''관부 페리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자본금 1.8억엔).[1] 이 회사는 한일 양측에 항로 담당 법인을 설립, 공동 운영하고 각 법인이 페리 한 척씩을 보유하여 수익을 공유하는 공동 운항·공동 계산 방식을 채택했다.[7]
1970년 6월 16일, 부산발 시모노세키행 관부 페리가 운항을 재개하며 25년 만에 양 도시 간 정기 해상 교통이 복원되었다.[1][2] 초기 운임은 1등 8640엔, 2등 5400엔이었고, 자동차 운송도 가능했다.[2] 다만, 양국 자동차 규격 및 법규 차이로 항송한 자동차가 상대국 도로를 주행할 수 있는 더블 넘버 제도가 도입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3]
1983년 한국 측 법인 부관페리[4]가 선박을 보유·운항하면서 공동 운항으로 매일 취항이 실현되었다. 1988년 관부 페리를 통해 일본-한국 철도 연락 승차권인 '한일 공동 승차권'[5] 판매가 시작되어 사실상 국제연락운송이 부활했으나, 2015년 6월 30일부로 판매가 종료되었다.
2. 3. 공동 운항 및 발전
1983년 한국 측 법인인 부관페리[4]가 선박을 운항하면서, 공동 운항으로 매일 배가 다니게 되었다.1988년에는 관부 페리를 통해 일본과 한국의 철도 연락 승차권인 한일 공동 승차권[5] 판매를 시작하여, 사실상 국제연락운송이 부활했다. 그러나 한일 공동 승차권 판매는 2015년 6월 30일부로 종료되었다.
3. 항로
시모노세키항(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 부산항 (대한민국 부산광역시)을 운항한다.
각 항구를 19시경에 출발하여 다음 날 오전 8시경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직선 거리로 200km 남짓의 단거리임에도 불구하고 12시간 이상의 운항 시간을 소요하는데, 이는 새벽에 도착 항구 내에 도착한 후, 도착 항구의 세관 및 출입국 관리 업무가 시작될 때까지 접안하지 않고 대기하기 때문이다.[1]
부관훼리와 공동 운항하며, 양사 선박이 교대로 취항하고 있다. 관부훼리가 출항한 다음 날 같은 항구를 부관훼리가 취항하는 일정이다. 각 항구에서의 영업 및 승선 접수 업무는 취항 회사와 관계없이 시모노세키 측에서는 관부훼리가, 부산 측에서는 부관훼리가 담당하고 있다.[1]
사전에 운수지국에서 해당 차량의 등록 증명서 등을 준비하고, 운전자가 국제운전면허증을 소지하고 있다면, 90일 이내로 일본의 자가용차, 오토바이를 한국에 반입하는 것이 가능하다(국제 번호판은 불필요). 마찬가지로 한국의 자가용차, 오토바이를 1년 이내(단, 운전자는 사증 유효 기간 내)로 일본에 반입하는 것도 가능하다.[1]
4. 선박
관부 훼리는 과거와 현재 다음의 선박들을 운항했다.
선박명 | 건조/취항 연도 | 제원 | 여객/차량 정원 | 비고 |
---|---|---|---|---|
하마유 | 1998년 8월 준공, 동년 8월 28일 취항 | 국제 총톤수 16,187톤(국내총톤수 7,747톤), 전장 162m, 폭 23.6m, 출력 12,000마력, 항해 속도 18 노트(최대 20.5노트) | 여객 460명, 승용차 30대, TEU 컨테이너 환산 140개 | 미쓰비시중공업(시모노세키 조선소) 건조, 일본 선적 |
관부 훼리 (1대) | 1970년 6월 준공, 동년 6월 16일 취항 | 3,875 국내 총톤, 전장 114.7m, 폭 16m, 출력 8,000마력, 항해 속력 16.5노트 (최대 17.4노트) | 여객 578명, 승용차 60대 | 오히라 공업 건조, 1976년 한국, 1991년 필리핀 매각 |
관부 훼리 (2대) | 1968년 10월 준공(한큐 페리), 1976년 7월 9일 취항 | 5,169 국내 총톤, 전장 127.3m, 폭 22.4m, 출력 7,340마력, 항해 속력 18.2노트 (최대 20.1노트) | 여객 952명, 트럭 80대 | 하야시 카네 조선 시모노세키 조선소 건조, 1984년 한큐 페리, 1986년 그리스 매각 후 해체 |
관부 훼리 (3대) | 1973년 12월 준공(한큐 페리), 1984년 9월 16일 취항 | 6,590 국내 총톤, 전장 135.5m, 폭 22m, 출력 16,000마력, 항해 속력 21.8노트 (최대 22.3노트) | 여객 689명, 승용차 30대, 트럭 80대 | 칸다 조선소 건조, 1998년 퇴역, 1999년 부관훼리, 2006년 그리스 매각 |
4. 1. 현재 운항 중인 선박
- 하마유
:* 일본 선적.
:* 1998년 8월 준공, 같은 달 28일 취항. 국제 총톤수 16,187톤(국내총톤수 7,747톤), 전장 162m, 폭 23.6m, 출력 12,000마력, 항해 속도 18 노트(최대 20.5노트).
:* 여객 정원 460명. 차량 적재량: 승용차 30대, TEU 컨테이너 환산 140개. 미쓰비시중공업(시모노세키 조선소) 건조.
4. 2. 과거 운항했던 선박
- 관부 훼리 (1대)
1970년 6월에 건조되어 같은 달 16일에 취항하였다.[7][8] 3,875 국내 총톤, 전장 114.7m, 폭 16m, 출력 8,000마력, 항해 속력 16.5노트 (최대 17.4노트)였다. 여객 정원은 578명이었고, 승용차 60대를 실을 수 있었다. 오히라 공업에서 건조하였다. 1976년 7월, 한국에 매각되어 "Dongyang Express Ferry"로, 1991년에는 필리핀에 매각되어 "Our Lady of the Rule"로 이름이 바뀌었다.
- 관부 훼리 (2대)
1968년 10월, 한큐 페리의 "다이로쿠 한큐"로 건조되었다. 1976년 7월에 구입하여 같은 달 9일에 취항하였다. 5,169 국내 총톤, 전장 127.3m, 폭 22.4m, 출력 7,340마력, 항해 속력 18.2노트 (최대 20.1노트)였다. 여객 정원은 952명이었고, 트럭 80대를 실을 수 있었다. 하야시 카네 조선 시모노세키 조선소에서 건조하였다. 1984년, 한큐 페리에 매각되어 "기보마루"로 이름이 바뀌었다. 1986년, 그리스에 매각되어 해체되었다.
- 관부 훼리 (3대)
1973년 12월, 한큐 페리의 "다이쥬나나 한큐"로 건조되었다. 1984년 8월에 구입하여 같은 해 9월 16일에 취항하였다. 6,590 국내 총톤, 전장 135.5m, 폭 22m, 출력 16,000마력, 항해 속력 21.8노트 (최대 22.3노트)였다. 여객 정원은 689명이었고, 승용차 30대, 트럭 80대를 실을 수 있었다. 칸다 조선소에서 건조하였다. 1998년 8월에 퇴역 후 1999년 2월, 부관훼리에 매각되어 "훼리 부관"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같은 달 5일에 취항하였다. 2005년 10월, "은하"로 이름이 바뀌었다. 2004년 7월에 운항을 종료한 후 2006년, 그리스에 매각되어 "Panagia Agiassou"로 이름이 바뀌었다.
참조
[1]
간행물
関釜フェリーとその周辺
日本海運集会所
[2]
뉴스
韓国へ初の国際フェリー マイカーで海外旅行
朝日新聞
1970-06-17
[3]
웹사이트
ダブルナンバー制と関釜フェリー
http://sozuu.jp/publ[...]
曽田さとしホームぺージ
2012-07-04
[4]
문서
[5]
문서
[6]
문서
[7]
서적
長距離フェリー50年の航跡 SHKライングループの挑戦
ダイヤモンド社
2018-08
[8]
뉴스
韓国にマイカー旅行OK 60台収容のフェリー あす釜山へ処女航海
朝日新聞
197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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